
하루하루가 특별한 이유를 부여하지 않아도 지나가듯 그렇게 별다른 특별함 없이 지나가던 나의 모든 계절들 중, 지난해부터 유독 내 마음을 시리게 했던 계절이 바로 가을이다. 작년, 스물두살짜리 나에게 가을은 많은 얘길 했었고, 내가 하는 많은 얘기들을 들어주었다.
그래서 작년 가을은 잊지못할 계절이 되어 내 가슴에 각인이 되었고, 그런 특별한 계절이 다시 있을까 싶었다. 그렇게 맞이한 올해 가을은 또 다른 의미로 내게 특별함을 주고 있었다.
우선은 겨울 눈이 녹으면서부터 시작된 나의 수천가지 감정들에게 용기를 주었고, 다른 빛깔로 가슴을 채울 수 있는 사랑을 주었다. 비록 내 그 사랑이 마주봄은 아니라, 나의 고백에서 끝이 났지만… 그래도 난 고맙고, 기쁘다. 97년 겨울에 찾아갔던 내 기억이 머물렀던 곳에서, 한껏 사랑하고 사랑받아서 행복했었던 열여덟살짜리 나와 그사람을 만나 그 때 얘기를 할 수 있게 해 주었고. 더 없이 소중한 친구를 곁에 머물게 해 주었다.
나는 이제 작년처럼 울지도 않고, 가슴을 꽉 채우고 있는 말들을 입밖으로 내지 못해 답답해 하지도 않는다. 이제 하고 싶은 말을, 하고 싶은만큼 했으니까…
그렇게 스물세살 내 가을은 새로운 색깔로, 새로운 소리로 채울 수 있어 특별했다.
기다려진다. 내년 가을은 어떤 얘길 들려주고, 하게 해 줄지…
주여, 때가 왔습니다. 지난 여름은 참으로 위대했습니다.
가을날 (Rilke, Reiner Maria)
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얹으시고
들녘엔 바람을 풀어 놓아 주소서.
마지막 과일들이 무르익도록 명(命)하소서
이틀만 더 남국(南國)의 날을 베푸시어
과일들의 완성을 재촉하시고, 독한 포도주에는
마지막 단맛이 스미게 하소서.
지금 집이 없는 사람은 이제 집을 짓지 않습니다.
지금 혼자인 사람은 그렇게 오래 남아
깨어서 책을 읽고, 긴 편지를 쓸 것이며
낙엽이 흩날리는 날에는 가로수들 사이로
이리저리 불안스레 헤매일 것입니다.